No.88 · 환자경험

병원 서비스 기준 만들기

가치 목록이 아니라 가치의 순서가 현장의 판단을 대신한다 — 안전·예의·경험·효율의 서열, 모든 것이 말한다, 담당이 아니라 역할, 상부에 묻지 않아도 되는 회복 권한.

문석준 서울비디치과 대표원장 · Patient Funnel 창립자 9분

한 문단 요약

액자에 건 친절·신뢰·전문성은 현장에서 아무것도 결정해 주지 못한다. 가치가 서로 부딪히는 순간 무엇이 이기는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재방문이 많기로 손꼽히는 한 테마파크 운영사는 서비스 기준을 넷으로 정하고 순서를 곧 우선순위로 삼았다 — 안전, 예의, 쇼, 효율. 병원으로 옮기면 감염관리와 의료 안전이 첫째, 환자에 대한 존중이 둘째, 환자가 보고 듣는 경험이 셋째, 회전율이 넷째다. 회전율 때문에 설명을 줄이고 싶을 때 예의가 효율보다 위라는 문장이 직원 대신 판단한다. 둘째, 환자 시선이 닿는 모든 곳은 무대다. 무대 위의 사담과 방치된 박스는 진료 실력과 무관하게 신뢰를 깎고, 무대 뒤에서는 직원이 제대로 쉴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청소는 직무지만 행복을 만드는 것은 역할이라는 구분이 "제 담당이 아닌데요"를 지운다. 넷째, 작은 문제는 현장에서 바로 풀도록 회복 권한을 미리 나눠 주고, 그 기록으로 같은 문제가 생기는 지점을 없앤다. 환자가 말하는 필요 아래의 바람 — 덜 불안하고, 내 상태를 알고, 내 시간이 존중받고 싶다는 마음까지 읽어야 다시 오고 싶은 병원이 된다.

대기실 벽에 "친절, 신뢰, 전문성"이 걸린 병원이 많습니다. 저도 그런 액자를 걸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데스크에서 이런 장면을 봤습니다. 대기 환자가 밀려 있는데, 한 어르신이 같은 질문을 세 번째 하십니다. 직원은 짧게 답하고 다음 환자를 불렀습니다. 친절해야 할까요, 빨라야 할까요. 액자는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았습니다. 친절도 효율도 다 중요하다고만 적혀 있었으니까요.

재방문이 많기로 손꼽히는 테마파크를 운영하는 회사가 자신들의 서비스 운영 방식을 공개한 책이 있습니다. 그들은 마법처럼 보이는 경험이 사실은 시스템이라고 말합니다. 그 시스템의 첫 줄이 바로 이 문제, 가치가 서로 부딪힐 때 무엇이 이기는가에 대한 답입니다.

목록이 아니라 서열 — 안전, 예의, 쇼, 효율

그 회사의 품질 기준은 네 개입니다. 안전, 예의, 쇼, 효율. 그리고 순서가 곧 우선순위입니다. 퍼레이드 진행과 아이의 안전이 부딪히면 무조건 안전이 이깁니다. 회전율과 손님에 대한 정중함이 부딪히면 정중함이 이깁니다. 기준이 네 개라는 것보다 서열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우선순위 없는 가치 목록은 현장에서 아무것도 결정해 주지 못합니다.

병원에는 이 순서가 거의 그대로 옮겨집니다. 감염관리와 의료 안전이 첫째, 환자에 대한 존중과 예의가 둘째, 환자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경험이 셋째, 회전율과 운영 효율이 넷째입니다. 앞의 데스크 장면에 이 서열을 대 보면 답이 나옵니다. 예의가 효율보다 위이므로 어르신의 세 번째 질문에도 같은 속도로 답합니다. 대신 효율은 다른 곳에서 찾습니다. 같은 질문이 반복된다면 그 질문을 미리 풀어 주는 안내가 빠져 있다는 뜻이니까요. 서열을 정해 두면 직원은 매번 원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스스로 판단합니다. 이 서열은 월례회의에서 문장으로 선언하고, 신입 교육 첫날에 가르치십시오. 원장이 참지 않는 것이 문화가 된다는 이야기는 문화는 액자가 아니다라는 글에 적었습니다.

회전율 때문에 설명을 줄이고 싶은 순간, 예의가 효율보다 위라는 한 문장이 직원 대신 판단한다.

모든 것이 말한다 — 무대와 무대 뒤

그 회사의 언어는 독특합니다. 손님은 게스트, 직원은 출연진, 근무는 공연, 손님이 보는 곳은 무대, 휴게실은 무대 뒤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원칙은 하나입니다. 모든 것이 말한다. 창고 문이 열려 있는 것, 의상의 지퍼가 보이는 것, 출연진이 무대 위에서 사적인 잡담을 하는 것은 모두 쇼를 깨는 일로 봅니다. 파크 곳곳의 쓰레기통 간격조차 손님이 쓰레기를 들고 걷는 거리를 조사해 정했다고 합니다.

병원에서 쇼라는 말이 불편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쇼는 오락이 아니라 일관성입니다. 주차장, 엘리베이터, 접수대, 대기실, 진료실, 화장실까지 환자의 시선이 닿는 모든 곳이 "이 병원은 믿을 만하다"는 한 가지 이야기를 하도록 관리하는 것입니다. 구겨진 가운과 데스크 위의 박스, 환자 옆에서 오가는 직원들의 사담은 진료 실력과 무관하지만 신뢰에는 진료만큼 영향을 줍니다. 그 회사의 창업자는 개장 뒤에도 손님처럼 파크를 걸으며 직접 줄을 서고 음식을 사 먹고 화장실을 써 봤다고 합니다. 손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의 도색을 대충 하자는 제안에는 "우리는 알고 있지 않느냐"고 답했습니다. 원장이 한 달에 한 번 주차장에서 수납까지 환자의 동선을 직접 걸어 보면, 매일 보던 병원에서 처음 보는 것이 나옵니다. 낡은 안내문 한 장, 어수선한 게시판 하나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그때 들립니다. 반대로 무대 뒤는 지켜 주어야 합니다. 탕비실과 회의실에서는 직원이 긴장을 풀고 제대로 쉴 수 있어야 합니다. 무대 위의 기준은 무대 뒤의 휴식이 지켜질 때만 오래 갑니다.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의 나와 환자 앞의 나를 나눌 수 있게 해 주는 것, 그것이 감정노동의 부담을 오히려 줄입니다.

담당이 아니라 역할 — 행복을 만든다는 한 문장

그 회사의 공통 목적은 한 문장입니다. 우리는 모든 연령의 사람들에게 행복을 만든다. 이 문장의 힘은 직무를 넘어선다는 데 있습니다. 그 파크의 청소 담당자는 길을 묻는 손님에게 지도를 그려 주고, 사진을 찍어 주겠다며 먼저 다가갑니다. 청소는 그의 직무지만 행복을 만드는 것은 그의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직무만 있는 조직에서 직원은 "그건 제 담당이 아닌데요"라고 말하고, 역할이 있는 조직에서 직원은 담당을 넘어 움직입니다.

그래서 그 회사의 신입 교육은 직무 기술보다 이 목적과 언어와 품질 기준을 먼저 가르칩니다. 기술 교육은 그다음입니다. 병원 신입 교육은 대개 반대입니다. 첫날부터 차트 프로그램과 소독 절차를 배우고, 우리 병원이 환자에게 무엇을 해 주려는 곳인지는 아무도 말해 주지 않습니다. 소독실 직원에게도, 데스크 직원에게도 같은 한 문장이 필요합니다. 그 문장이 있어야 소독실 직원이 길 잃은 보호자를 접수대까지 안내합니다. 역할은 공지로 생기지 않고 교육으로 심어집니다. 첫 90일을 어떻게 설계할지는 채용의 절반은 입사 후 90일 동안 완성된다는 글에 정리했습니다.

이번 주 실행 — 서열과 무대

새 매뉴얼을 쓰기 전에 순서부터 정하십시오.

  • 우리 병원의 서비스 기준 4가지와 그 서열을 한 문장으로 정해 전 직원 회의에서 선언한다(예: 안전 > 예의 > 경험 > 효율)
  • 원장이 환자 동선을 주차장부터 수납까지 직접 걸으며 무대를 깨는 장면 10개를 사진으로 목록화한다
  • 무대 위 행동 규칙(사담, 물품, 표정)과 무대 뒤 휴식 규칙을 함께 적어 붙인다 — 휴식 규칙이 빠지면 무대 규칙도 오래 못 간다
  • 데스크 직원에게 일주일간 환자가 가장 자주 묻는 질문을 기록해 달라고 하고, 상위 5개에 대한 선제 안내를 만든다
  • 현장 직원이 상부에 묻지 않고 바로 쓸 수 있는 회복 수단을 문제 크기별로 3가지 정해 공유한다

상부에 묻지 않는 회복 — 권한은 미리 나눠 준다

그 회사가 강조하는 서비스 회복의 원칙은 속도와 현장성입니다. 아이가 산 아이스크림을 바닥에 떨어뜨리면 출연진은 위에 묻지 않고 새 아이스크림을 건넵니다. 몇 천 원의 즉석 판단이 그 가족의 하루를 구합니다. 핵심은 이 판단이 즉흥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문제의 크기별로 현장에서 바로 쓸 수 있는 회복 수단이 미리 정의되어 있고, 출연진은 그 안에서 고릅니다. 문제가 보고 단계를 오르내리는 동안 손님의 감정은 굳습니다.

병원에도 작은 회복 수단이 있습니다. 예약이 크게 밀렸을 때 기다리신 이유를 먼저 설명드리는 것, 다음 예약을 원하시는 시간으로 우선 잡아 드리는 것, 진심을 담은 사과. 이런 것을 실장 승인 없이 데스크 직원이 바로 쓸 수 있게 정해 두십시오. 그리고 회복은 기록으로 남깁니다. 어떤 문제가 어디서 반복되는지 쌓여야 다음 달에 그 지점 자체를 없앨 수 있습니다. 그 회사는 손님의 기대를 알기 위해 손님의 이야기를 듣는 장치를 파크 곳곳에 둡니다. 병원에서는 데스크가 바로 그 장치입니다. 접수 직원이 매일 듣는 질문과 불편이 다음 개선의 목록입니다. 불만이 커졌을 때의 대화법은 입장이 아니라 이해관계를 보라는 글을 참고하십시오.

그 회사가 손님을 연구하는 방식에서 하나만 더 가져오겠습니다. 그들은 손님들이 폐장 무렵 자기 차를 찾지 못해 헤매는 것을 발견하고, 주차 구역별 입차 시간을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손님이 몇 시쯤 도착했는지만 기억하면 직원이 차의 위치를 찾아 줍니다. 손님이 불편을 말하기 전에 기록이 먼저 불편을 찾아낸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손님이 말하는 필요와 그 아래의 진짜 바람을 나눠 봅니다. 가족이 파크에 오는 진짜 이유는 놀이기구가 아니라 함께 보내는 시간과 아이의 웃는 얼굴이라는 식입니다. 병원에 오시는 분의 필요는 진료지만, 그 아래의 바람은 대개 덜 불안하고 싶다, 내 상태를 알고 싶다, 내 시간이 존중받고 싶다입니다. 필요만 채우는 병원은 불만을 없애고, 바람까지 읽는 병원은 다시 오고 싶은 곳이 됩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친절하라는 말은 현장에서 아무것도 결정해 주지 못합니다. 안전, 예의, 경험, 효율의 순서를 정해 선언하고, 환자 눈에 닿는 모든 곳을 무대로 관리하되 무대 뒤의 휴식을 지켜 주십시오. 신입에게는 직무보다 역할을 먼저 가르치고, 작은 회복은 현장에서 바로 하도록 권한을 미리 나눠 주십시오. 마법처럼 보이는 경험은 우연이 아니라 이 네 가지가 매일 반복된 결과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병원 서비스 매뉴얼을 만들었는데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습니다.

매뉴얼이 행동 목록만 담고 판단의 순서를 담지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현장의 어려움은 대개 친절과 속도, 설명과 회전율처럼 두 가치가 부딪히는 순간에 생기는데, 목록만으로는 무엇을 먼저 할지 알 수 없습니다. 안전, 예의, 환자가 보고 듣는 경험, 효율처럼 기준을 네 개 안팎으로 줄이고 그 순서를 우선순위로 선언해 보십시오. 그러면 직원은 원장에게 묻지 않고도 같은 결론에 도달합니다. 서열은 신입 교육 첫날과 월례회의에서 반복해서 말해야 현장의 습관이 됩니다.

직원들이 자기 담당이 아니면 손을 놓습니다. 어떻게 바꾸나요?

직무만 정해져 있고 역할이 정해져 있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현상입니다. 소독은 직무이고 환자가 안심하고 돌아가게 하는 것은 역할이라는 구분이 필요합니다. 병원이 환자에게 무엇을 해 주려는 곳인지 한 문장으로 정하고, 신입 교육에서 차트 프로그램보다 그 문장과 서비스 기준을 먼저 가르치십시오. 그리고 담당을 넘어 움직인 장면을 회의에서 구체적으로 인정하면, 그 행동이 우리 병원의 표준이라는 신호가 됩니다. 역할은 공지가 아니라 교육과 인정으로 자리 잡습니다.

환자 불편이 생겼을 때 직원이 매번 실장에게 물어봐야 해서 대응이 늦습니다.

회복 권한을 미리 나눠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보고 단계를 오르내리는 동안 환자의 감정은 굳습니다. 문제 크기별로 현장 직원이 승인 없이 바로 쓸 수 있는 회복 수단을 정해 두십시오. 예를 들어 지연 사유를 먼저 설명드리기, 다음 예약을 원하시는 시간으로 우선 잡아 드리기, 진심 어린 사과처럼 작은 것부터입니다. 그리고 회복한 내용은 짧게 기록으로 남겨 같은 문제가 어디서 반복되는지 보고, 그 지점 자체를 없애는 개선으로 연결하십시오.

기준의 순서가 정해진 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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