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문단 요약
주인은 병원이 망하면 전부를 잃고, 직원은 이직하면 된다. 리스크가 다른데 태도만 같기를 바라는 것이 주인의식 요구의 정체다. 이 모순을 인정하면 다음 질문이 바뀐다 — "어떻게 주인처럼 일하게 만들까"가 아니라 "어떻게 우리 병원의 팬으로 만들까". 팬은 주인이 아니면서도 자발적으로 열정을 쏟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원장님들 모임에서 빠지지 않는 한탄이 있습니다. "우리 직원들은 주인의식이 없어." 저도 개원 초기에 정확히 같은 말을 했습니다. 내 병원처럼 아껴주길 바랐고, 내가 안 봐도 알아서 움직여주길 바랐습니다. 그리고 그 기대는 매번 배신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배신감을 뒤집어 보게 됐습니다. 직원이 이상한 게 아니라 내 기대가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는 걸요.
리스크가 다른데 태도가 같을 수 있는가
주인이 왜 주인처럼 일할까요? 마음이 착해서가 아닙니다. 병원이 망하면 전부를 잃기 때문입니다. 대출, 신용, 커리어, 가족의 생계까지. 주인의식이라는 건 그 리스크가 만들어내는 태도입니다.
직원은 어떨까요? 병원이 망하면 직원은 슬프겠지만, 이직하면 됩니다. 직원이 냉정해서가 아니라 그게 고용 계약의 구조입니다. 우리는 직원에게 병원의 지분도, 병원이 잘됐을 때의 초과 이익도 주지 않습니다. 리스크는 나눠주지 않으면서 리스크가 만드는 태도만 달라고 하는 것 — 이것이 주인의식 요구의 민낯입니다.
직원은 절대로 주인이 될 수 없다. 이 문장이 냉소가 아니라 해방인 이유는, 여기서부터 진짜 설계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오해는 마십시오. "직원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정반대입니다. 성립하지 않는 기대를 내려놓아야, 성립하는 기대를 설계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주인은 못 되지만, 팬은 될 수 있다
여기서 제가 찾은 답은 의외의 곳에 있었습니다. 환자였습니다.
우리 병원의 팬이 된 환자를 떠올려 보세요. 그 환자는 병원의 주인이 아닙니다. 지분도 없고 월급을 받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병원을 자랑하고 다니고, 지인을 데려오고, 병원이 잘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주인이 아니면서도 자발적인 열정을 가진 존재 — 그게 팬입니다.
직원에게 우리가 바라는 게 정확히 이것 아닙니까? 시키지 않아도 병원을 아끼는 마음. 그렇다면 방법도 같아야 합니다. 환자를 팬으로 만들 때 우리는 강요하지 않습니다. 기대를 넘어서는 경험을 설계하죠. 직원도 똑같습니다. 주인의식은 요구하는 것이고, 팬심은 설계하는 것입니다.
방향 전환
질문을 바꾸면 행동이 바뀝니다.
- "왜 알아서 안 하지?" → "내가 이 직원의 기대를 넘어선 적이 언제였지?"
- "주인처럼 일해라" → "이 병원에서 일하는 게 자랑이 되게 하려면?"
- "요즘 애들은 책임감이 없어" → "책임을 지면 뭐가 돌아오는 구조인가?"
직원을 팬으로 만드는 재료는 환자 때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름을 부르는 존중, 성장하고 있다는 감각, 잘한 것이 반드시 인정으로 돌아오는 경험, 그리고 공정한 보상. 화려한 복지가 아니라, 기대하지 않던 순간에 기대를 넘어서는 것. 환자 경험 설계와 완전히 같은 문법입니다.
매뉴얼을 안 보는 직원을 혼내기 전에
이 관점이 서면 일상의 장면들이 다르게 보입니다. 대표적인 게 매뉴얼입니다. "매뉴얼 다 만들어줬는데 왜 안 지키지?" — 주인의식 프레임에서는 직원의 태도 문제입니다. 하지만 팬 프레임에서 보면 질문이 달라집니다. 그 매뉴얼, 지키기 쉽게 만들어져 있습니까? 왜 필요한지 설명됐습니까? 지켰을 때 인정이 돌아옵니까?
매뉴얼은 매뉴얼일 뿐입니다. 지켜지지 않는 매뉴얼은 십중팔구 사람 문제가 아니라 설계 문제입니다. 팬이 안 생기는 걸 환자 탓으로 돌리는 병원이 성장하지 못하듯, 매뉴얼이 안 지켜지는 걸 직원 탓으로만 돌리는 조직도 성장하지 못합니다.
주인의식이라는 말을 병원에서 지워보시길 권합니다. 그 자리에 이 질문을 놓으세요. "우리 직원 중에 우리 병원의 팬이 몇 명인가." 그리고 더 아픈 질문 하나. "나는 직원의 팬이 될 만한 경험을 준 적이 있는가." 환자를 팬으로 만드는 병원의 첫 번째 팬은, 언제나 직원이어야 합니다.